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이 영화가 개봉할 때부터 계속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치 내 블로그처럼 미루고 미루다 보니 한참 밀려서 이제야 보게 되었다. 사실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안했음 못봤을 것 같다. 영화의 감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브리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마히토는 어렸을 적에 화재로 인해 엄마를 잃은 상처를 가진 소년이다. 거기다 아빠는 엄마의 동생과 재혼해 이복동생을 임신했으며, 일본은 전쟁 중인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따라서 작품에 나오는 판타지 세계는 충격적인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마히토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영화가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엄청 조금만 보여주는 느낌이 강해서 해석을 잘하기는 좀 힘들 것 같다. 내용이 불명확한 거랑 별개로 이 영화 배경이 진짜 엄청나게 예쁘다. 괜히 만드는데 500억이 든 지브리 사상 최대 제작비의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배경 작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흰토끼가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안내한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푸른색 왜가리가 마히토를 탑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이 왜가리 보고 충격먹었다. 포스터의 잘생긴 모습을 기대했는데 이렇게 못생겼을 수가...그래도 영화를 보다보니 좀 정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안내를 받아 자신의 내면 세계로 들어가는 마히토가 상징하는 것은 아무래도 일본이 전쟁 중이던 시절 공장장의 아들로 태어난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일 것이다.

마히토의 엄마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히미는 마지막에 무너지는 탑의 세계를 떠나면서 자신은 죽겠지만 마히토 같은 좋은 아들을 낳고 싶어 태어날 것이라 말한다. 처음에 마히토가 탑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봤던 와라와라들은 태어나기 위해 하늘을 날아간다. 이것을 보면 탑의 세계에 있는 존재들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존재"에 가까운 것들인 것 같다. 작품에서 앵무새, 펠리컨, 왜가리... 새가 종류도 수도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알은 세계이며 새는 태어나기 위해 하나의 세계를 부순다는 <데미안>의 표현이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모노노케 히메>, <천공의 섬 라퓨타>와 같은 초기 작품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자연에 대한 존경과 어리석고 무책임한 인간의 욕심에 대한 분노를 자주 표현했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와 같은 최근 작품에서는 그러한 묘사가 많이 줄어들었으며 본인 또한 인터뷰를 통해 "자연"과 "인간" 이 둘 중에서 어느 한 쪽의 옳고 그름, 착하고 나쁨을 가릴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작품에서도 펠리컨은 처음에는 와라와라를 잡아먹으려는 악한 존재, 포식자로 묘사되지만, 실은 탑의 세계에는 물고기가 없기 때문에 와라와라를 먹어야만 했던 사정이 있었다.

탑의 세계의 주인이자, 마히토의 증조할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이 노인은 아무래도 현재의, 또는 현재보다는 조금 더 미래의 미야자키 하야오일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수많은 명작들처럼, 탑의 세계는 풍성하고 아름답지만 물고기가 없는 바다, 살인 앵무새 같은 모순들을 품고 있고, 미아쟈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처럼 세계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노인은 마히토에게 자신의 세계를 이어가주기를 바라지만 마히토가 바깥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하자 크게 막지 않고 탑의 세계에서 내보내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들이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이어나가주기를 바랬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 것 같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에반게리온>이 관객들에게 "모래성을 쌓을 수 있는 놀이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든 사람의 의도도 좋지만 관객들이 자신만의 의미와 해석을 만들며 작품을 즐기기를 바란 것이다. 작품에서 탑의 세계에서는 강력하고 무서웠던 앵무새들이 현실로 나오자 바로 작고 허약한 현실 앵무새가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도 자신의 작품에 담긴 이상이 가진 현실과의 괴리를 표현한 것 같았다. 나에게는 <에반게리온>시리즈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애니메이션들도 너무나 즐거운 "모래성을 쌓을 수 있는 놀이터"였다. 지금까지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준 미야자키 하야오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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