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르세르크] 리뷰 : 발버둥치는 자

Dongho150 2025. 2. 10. 16:19

드디어 계절학기에서 해방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 글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 글을 기다린 분들에게는 미안하다. 원래 종강을 하고 글을 더 열심히 쓰려고 했는데 이번에 계절학기 7학점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할 게 너무 많았다. 계절학기는 한 2주일 전에 끝났지만 이미 모멘텀을 잃어버려서 블로그를 거의 방치하다 오늘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져서 티스토리를 켰다.

 

 

  베르세르크는 정말 좋아하는 내 인생만화 중 하나이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그것은 검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오직 너만이, 내게 꿈을 잊게 해줬다." "등짝을 보자.' 등 수많은 명대사가 있지만 만화의 핵심 주제는 "인간은 어떻게 운명과 씨름하는가"라고 볼 수 있다.

 

  베르세르크의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베르세르크는 지옥과도 같은 전장에서 태어나 검을 극한으로 다루는 검사이자 용병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가츠(흑발)와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천민이지만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리피스(백발)의 이야기이다. 우연히 그리피스와 만나 그리피스의 용병단 "매의 단"에 들어간 가츠는 그리피스와 함께 수많은 승리를 이끌어내며 그리피스가 꿈에 가까워지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가츠는 우연히 그리피스가 자신은 누군가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닌, 자기만의 꿈을 좇는 자만을  친구로 생각한다는 말을 엿듣고 그리피스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매의 단을 떠나려 한다. 

  그리피스는 이를 막기 위해 가츠와 결투까지 감행하지만 가츠가 이겨 결국 떠나게 되고, 이 때 그리피스는 말과는 다르게 이미 가츠를 소중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가츠가 떠나면서 심리가 완전히 무너진다. 무너지는 마음을 채워보려 공주를 범한 것이 들켜 그리피스는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온몸의 근육이 제거되고 혀를 잘려 말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리피스의 꿈은 무너진 것이다. 가츠는 그리피스가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피스 구출 작전에 참여해 그리피스를 구출하지만, 이미 그리피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폐인이 되어버렸기에 그리피스와 매의단 모두가 절망에 빠진다. 이 때, 4명의 고드핸드(God hand), 운명에 유린당해 꿈이 무너진 자의 앞에 나타나 소중한 것을 제물로 바쳐 그 꿈을 부활시키는 마왕들이 나타나 그리피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제물로 바쳐 마왕으로 부활할지 묻는다.

 

  그리피스는 분명 가츠와 매의 단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꿈을 위해 매의 단 전부를 바친다고 선택한다. 이후 매의 단 전체를 제물로 한 강마의식이 이루어지고 그리피스는 마왕 페무토(검은 매)로 재탄생한다. 가츠는 강마의식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눈과 한쪽 팔을 잃고, 연인인 캐스커는 그리피스에게 강간당하며 이 충격으로 기억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신체에 제물의 낙인이 새겨져 틈만 나면 마물들이 제물을 죽이기 위해 습격해오는, 절망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후의 스토리에서도 다양한 인물과 주제가 나오고 인상깊은 내용들이 많지만 베르세르크의 꽃은 황금시대~강마의식 편이라고 생각하기에 줄거리는 이 정도로만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작품에서 가츠는 계속해서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으며 몸에 새겨진 제물의 낙인 또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상징한다. 이러한 운명에 대해 이전에 가츠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해골시사는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맞서고 꿈틀거리라고 말한다. 사실 운명에 맞선다는 개념은 애매할 수 있다. 운명은 맞서는 걸 허락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가 운명에 맞서려고 한 시도들은 모두 그를 원래의 운명으로 이끌었다. 서유기에서 부처님의 능력을 부정하려던 손오공은 세상 끝의 기둥에 자신이 왔다고 흔적을 남기지만 이것은 역으로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다. 인간이 운명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싸움이라기 보다는 발버둥, 씨름에 가깝다.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하는 운명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씨름하고 발버둥치는 것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운명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운명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신이 아니라면 이것을 바꿀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구하고자 한다. 나는 인간이 가장 큰 의미를 구해야 하는 곳이 이 운명에 발버둥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삶을 구성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우리의 정신, 신체, 가족, 재산, 종교, 사상 등에서 의미를 찾으며 이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운명이 당신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붙일 때, 성경의 욥이 겪었던 것처럼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을 죽이며, 신체마저 유린할 때, 이런 것들이 전부 의미가 없고 허무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욥에게 요구했던 믿음처럼, 우리는 운명에 발버둥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 

 

 

"발버둥치고, 맞서고, 꿈틀거려라!" (베르세르크)